::극단친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작성일 : 14-02-24 14:23
한겨레 신문 전면게재된 복화술 기사입니다. - 입 열지 않고도 상사 욕할 수 있어요.
 글쓴이 : 수잔실장
조회 : 7,916  

입 열지 않고도 상사 욕할 수 있어요
등록 : 2014.02.21 19:43 수정 : 2014.02.2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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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극단 ‘친구’ 사무실에서 극단 대표이자 안재우복화술연구소 소장인
복화술사 안재우씨가 인형 ‘메롱이’와 함께 복화술 연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토요판] 몸 / 나의 몸(18) 복화술사 안재우의 입술

▶ 혀와 이를 막고 있는 입술은 사실 몸 안에서 밖으로 밀려나온 것입니다.
사실 몸 안의 피부와 입술의 성질은 같지요. 휘파람을 불고 립스틱을 바르고 키스를 하는 입술은 말을 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도 기여를 합니다.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한
복화술사의 입술은 어떤 점이 다를까요. 복화술사 안재우씨를 만나 복화술사의 입술 활용법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보통 복화술은 입술을 안 움직이고 말한다고만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복화술사의 입술은
움직이고 있는 입술입니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2층 세미나실에서 복화술사 안재우(47)씨의
‘행복한 복화술 학교 10기’ 첫 수업이 진행중이었다. 동화구연가, 이벤트업 종사자, 목사 등 약 30명의 남녀 수강생은 안씨의 입술에 주목했다. 2시간30분 동안 안씨는 복화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입술을 활용한 발성을 중심으로 복화술 수업을 했다. 안씨가 손에 든 인형과 대화를 시작했다.
안씨 손에 들린 인형이 생명력을 얻는 신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안녕?”
“안녕?”(인형)
“오늘 기분 어때?”
“별로야.”(인형)
“왜?”
“마(나)음이 아파.”(인형)
안씨는 국내 유일의 전문 복화술사다. 2009년 이후 성인·어린이·가족 대상 복화술 공연을 해왔다.
‘메롱이 아빠의 육아일기’ ‘신기한 소리상자’ ‘마마쇼’ 등 그가 직접 쓴 대본을 토대로 매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09~2010년 전세계 복화술사들이 모이는 축제 벤트 헤이븐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미국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특출한 재능을 갖춘 사람들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복화술사로 더 널리 알려졌다.
복화술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해 마치 옆에 있는 인형이 말을 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기술이다. 기원전 6세기 무렵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종교와 마술이 결부되어 시작됐다. 배로 호흡해
말한다고 상상해 ‘복’(腹) 자를 붙였다. 고대 문헌에 복화술사는 신을 대신해 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고대 복화술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우리클레스는 ‘배꼽으로 말하는 예언자’라고 불렸다.
아프리카나 뉴질랜드의 부족 중에는 복화술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고대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복화술은 종교전쟁이 발발한 뒤 침체기를 겪다가 19세기 들어서야 다시 시작됐다. 현재는 코미디언,
공연 전문가들이 주로 사용한다. 복화술의 주무대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회를 풍자하고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복화술사들이 여럿이다.

국내 복화술의 역사는 짧은 편이다. 황문평의 책 <한국연예인물사>를 보면 극과 극 사이 약 10~20분 동안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짧은 공연을 하던 전방일씨가 최초의 복화술사라고 나온다. 가수 윤복희씨의 아버지 윤부길씨가 1940년대에 복화술을 공연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중장년층에게는 코미디언이자 사회자였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씨도 인형복화술사로 기억된다.
국내 유일의 전문 복화술사로 마치 옆의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입술 움직이지 않고 말할 수 있어 ㅁ·ㅂ·ㅍ 입술소리 빼고는 혀를 움직여 발음할 수 있다 “복화술을 하면 가슴속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더 쉬워요 인형이 대신 진심을 전해주죠 운전할 때 가끔 복화술로 화를 풀면 싸움 날 일도 없죠”
“하하하, 일단 웃어 보세요”
이후 국내에서 복화술을 전문적으로 상업공연하는 복화술사로서는 안씨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반 복화술을 알게 된 뒤 미국에서 복화술 관련 서적을 직접 수입해 번역하고 독학으로 익혔다.
최근 인터넷 카페 활동을 하며 모인 ‘복화술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500여명과 한국복화술협회를 만들었다. 복화술사 안씨에게 복화술 하는 입술이란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신체 부위로 꼽힌다.
입술만으로도 소통을 할 수 있다. 입술을 비쭉 내밀거나 꾹 다물거나 실룩거리는 입짓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몸이 아프거나 겁이 날 때면 입술이 힘없이 벌어지거나 바르르 떨리고 파래지기도 한다.
입술의 변화가 언어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설명이지만, 복화술을 할 때 입술은 좀더 기술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보통 공연에서는 인형과의 호흡,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 대본, 현장 분위기 등 공연적 요소가 필수지만 이 중 (기술적으로) 입술을 잘 활용해 말을 전하기가 가장 중요하다.
복화술사의 입술은 고정된 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입술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한다. 복화술을 배우러 온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안씨가 말했다.
“복화술은 자기 가슴의 이야기를 입술을 열지 않고, 인형이 대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예술이에요. 복화술의 장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익숙해지고 바로 변용하는 데 연습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저도 20년 가까이 하고 나서야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안씨는 언제나 웃는 인상이다. 늘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웃지 않으면 복화술사가 아니라고 안씨가
수강생들에게 말했다. 안씨는, 복화술은 마술과 같이 속임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며 복화술 방법을 공개했다. 쉽지만 단련하기 어렵다는 걸까. 신비로운 복화술의 세계는 그렇게 열렸다. 안씨가 ‘이것 하나만 하면 50%는 배운 것’이라는 것은 ‘웃음’이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하하, 일단 웃어 보세요. 얼굴근육이 다 풀릴 때까지 입을 열고 웃으세요. 그리고 입술 주변 근육을 쫙 펼치듯 세게 웃으세요. 이를 앙다물지 말고 약간 벌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다물면 파열음이 생기고 발음이 정확해지지 않아요. 자, 이게 기본동작이에요. 활짝 안 웃으면 입 주변 근육이 씰룩거려
입술이 자꾸 움직입니다.”
그의 입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었다. 표정 변화 없이 그의 가늘어진 입 사이로 인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렇듯 그도 입에 경련이 일었다고 했다. 발음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궁금했다. 안씨가 설명했다.
“고정됐다면, 이제 혀로 발음을 만드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할 때 입술을 움직이며 말을
하잖아요. 복화술할 때 입술 대신 혀를 많이 움직여 보세요. 입술소리(두 입술이 부딪쳐야만 나는
소리)인 미음(ㅁ), 비읍(ㅂ), 피읖(ㅍ) 말고는 혀만 움직여도 발음을 제대로 낼 수 있어요. 대신 혀를
더 강하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죠. 혀가 어느 위치에 가야 정확한 소리가 나는지 생각하면서 발음해 보세요.”
예를 들어 발음마다 혀의 위치가 다르다. ‘나’는 입안 천장에 혀를 댔다가 떼야 소리가 난다. ‘라’는
혀가 말려들어가야 하는 식이다. ‘카’는 입천장을 혀가 두들긴다.
복화술사의 입술이 크게 열릴 때
안씨의 입술이 피하고 싶은 발음도 있다. 입술이 없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 미음, 비읍, 피읖 같은 입술소리다. 입술을 부딪쳐야만 소리가 나는 입술소리를, 입술을 고정하고 말하는 복화술로 어떻게 낼 수 있을까. 1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어린이극단 <친구> 사무실에서 만난 안재우씨한테서 추가수업을 들었다.


지난해 11월24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모피 반대 패션쇼 ‘제2회 사랑을 입다’에서
공연 중인 안재우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사실 입술소리는 입술을 서로 닿게 하지 않고 제대로 낼 방법이 없어요. 복화술 하는 데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요. 방법을 찾는다면 ‘밥’을 ‘진지’라고, 발음하기 쉽게 단어를 바꾸기도 해요.
그런데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변형법이에요. 단어 자체를 변형해서 내는 방법이에요. ㅁ은 ㄴ으로, ㅍ은 ㅋ이나 ㅌ으로 발음하죠. 그리고 결국 공연은 인형과 저의 대화니까, 맥락을 이용하면 발음이 조금 부정확하더라도 공연에서 큰 무리는 없어요.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노래음은 대부분 알잖아요. 입술소리가 발음되지 않아도 음으로 소리를 내면 의미 전달이 어렵지 않고요. ‘아준마’라고 해도
‘아줌마’라고 들리듯 귀에 익숙한 단어도 많아요. 대신 최대한 비슷하게 발음하도록 호흡 훈련을 많이 하죠. 아마추어와의 차이는 그 지점이에요.”
안씨의 입술은 닫힌 입술만은 아니었다. 매우 크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입술도 복화술사의 입술이었다.
“인형이 말할 때는 최대한 나의 입술근육을 움직이지 않지요. 반대로 인형한테 직접 말을 할 때는 모든 모음을 다 정확하게 내려고 해요.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라는 11음절을 말해보실래요? 생각보다 입술을 많이 안 움직이고 발음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어요. 실제로 우리는 이미 복화술을 구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공연할 때 모든 음절을 다 짚어서 발음을 하면 입술을 안 움직이고 말할 때랑 대비가 더 잘되기 때문에 전달 효과가 좋아지죠.”
관객들의 시선은 이미 인형과 복화술사의 이야기에 빼앗긴 상태지만, 완벽한 착시 효과를 위해 때때로 입술을 더 크고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설명이었다. 복화술은 말을 할 때 항상 입술을 움직여 말한다는 우리의 ‘이론’을 비튼다. 복화술사의 노력은 관객들이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틈을 파고든다.
사람의 몸으로 만드는 마술
먹고 말하고 마시고 사랑하는 입술은 포유동물만 가지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의 새끼는 입술로 젖을
 빤다. 그중에 붉은 입술은 사람만이 가진 무엇이다. 다른 동물에게는 안쪽에 있어야 하는 상피세포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 빛을 보았다. 그래서 입술은 그 자체로 사랑을 닮았다. 고종석은 그의 책 <어루만지다>에서 “입술은 관능의 둥지이자 표적”이기에 “사랑의 기슭 또는 봉우리”라고 표현했다. 높이 솟은 진피의 돌기와 투명한 표피, 잘 발달된 모세혈관이 입술을 붉고 도톰하게 한다. 두 입술이 벌어졌다 포개지며 아름다운 선이 얼굴에 그려진다. 영국 빅토리아여왕 시대, 서양의 젊은 여성들은 예쁘고
도톰하고 주름진 입술을 영원히 갖고 싶은 욕심에 알파벳 ‘피’(P)가 많이 들어가는 단어들을 연습했듯이 현대 많은 사람들은 입술을 사랑스럽게 가꾸는 여러 방법을 강구한다. 신비로운 복화술의 세계를
안내하는 복화술사에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입술은, 그보다 ‘성실한 일꾼’의 이미지가 강했다.
“복화술사에게 입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기술이 입술에 있으니 보통사람들의 입술과는 다르죠. 공연 중에는 기계처럼 작동해야 하는 순간도
많아요. 복화술을 할 때 보통 입술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말을 하기 더 어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슴속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더 쉬워요. 인형이 나 대신 진심을 전해주는 거죠.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공연할 때마다 저의 입술은 저의 진심이 지나는 어떤 통로처럼 느껴져요.”
복화술사 안씨의 꿈은 세계에 한국 복화술을 알리는 것이다. 발음이 제각각 달라 외국의 언어를 복화술로 익히기란 쉽지 않기에 노래나 퍼포먼스 위주의 한국식 복화술을 구상해 전세계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또 성악가들과 복화술 성악 공연도 기획중이다. 자살 방지, 학교폭력 반대 등의 주제로 청소년 대상 복화술 공연을 할 계획이 있기도 한다. 언제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감동과
웃음을 전하고 싶다.
“복화술을 배우러 오는 분들 중에 재미난 이유로 오시는 분들 많아요. 상사 몰래 뒤에서 욕을 하고 싶다는 이유가 꽤 많았어요. 저도 운전할 때 가끔 복화술로 화를 풀기도 하죠. 그러면 싸움이 나지 않아 좋아요. 제 얼굴이 웃고 있으니까 설마 저 사람일까 의아해하고요. 싸움이 붙지 않죠. 친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놀릴 때, 식당에서 주문할 때 종종 복화술을 이용할 때도 있긴 하네요. 하하.”
두개의 붉은 선을 옆으로 늘였다가 오므린다. 꽃봉오리가 터지듯 ‘입술’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사람의 몸이 하나의 성(castle)이라면, 성 안에 사는 사람이 성 밖으로 나오듯 나의 말들은 수시로 내 몸 밖으로 쏟아진다. 입술은 그 성을 세상과 이어주는 한 개의 문이 아닐까. 안씨의 성문은 다양한 모양으로 변주되는 신비한 문이다. 신비한 문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 다양한 인생이 쏟아져 나온다. ‘메롱이’ ‘깡여사’ ‘투명인간’ ‘쓰레기’ 등은 그가 영혼을 불어넣어준 인형의 이름이다. 안씨는 복화술이야말로 “사람의 몸으로 만드는 예술이자 진실한 마술”이라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